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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이라고 쓰고 냉파라고 읽는다

기분이 저기압이라면 고기앞으로 가라_대패삼겹살, 꾸리살 소고기

180323

노브랜드 대패삼겹살, 이마트 꾸리살 소고기


유난히 힘들었던 하루였다.

나와 남자친구에게 상을 주고 싶었던 저녁, 고기앞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차린건 많아보이지만 모두 씻고 담아놓기만 한거라 생각보다 수월히 상차림을 했다.

냉동실 안에 박제되어있던 노브랜드 삼겹살을 꺼내고, 참새방앗간처럼 들리는 이마트에서 마감세일로 3천원짜리 꾸리살을 사왔다.

무슨 부위인지는 알 수없지만 소고기가 3천원인데 더이상 안 살 이유가 없었다.

소고기는 코스트코 소고기 시즈닝을 해준 후 잠시 잠재워 놓는다.

고기의 선홍빛 알흠다운 자태와 깻잎과 로메인상추의 푸릇푸릇함이 입맛을 돋게 한다.

사실 오늘 나는 '철뚝집'을 가고싶었다.

하지만 체인점인 그곳들 중 우리집에서 가까운 지점은 주차가 안된다는 점, 회사에서 가까운 곳은 집과는 반대로 가야 한다는 점 때문에 집에서 먹기로 결정했다.

뭐, 철뚝집보다 맛있게 먹으면 되니까! 그렇지만 철뚝집의 그 빠알간 파채절임은 포기할 수 없어서 안들려도 되는 이마트를 한번 더 들렸다.

그 덕에 3천원짜리 꾸리살도, 파릇파릇한 파채도 득템했다.

파채는 최대한 비슷하게 노브랜드 초장, 고춧가루, 깨소금, 참기름 듬뿍 넣어 만들어 줬다. 

냉파의 핵심인 버섯들(표고, 양송이, 새송이)를 깔아주고, 비싸다는 명이나물도 꼽사리 껴주고 청양고추대신 산고추를 반찬으로 놓아준다.

셋팅은 완료되었고,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숨쉬듯이 와인 마실 준비를 마쳤다.

사실 와인을 마실 생각은 아니었는데 3천원짜리 꾸리살을 득템하면서 소고기엔 와인이지!라는 이상한 논리로 할인와인을 업어오게 된다.

이것이 바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말의 예이다.

프랑프랑에서 사온 와인잔들과 폴라앳홈 생크림 식기들, 월풀 하이라이터와 함께하니 집에서도 근사한 저녁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돈쓰는 거라며 우린 둘다 지난 과거의 소비들에 대해서 뿌듯해 했다....껄껄

남친 시선에서 바라본 카메라 샷.

사진이 뿌연 것을 보니 핸드폰을 얼른 바꾸고 싶다.

고기 근접샷, 저기압이라 고기앞으로 왔는데 오길 잘한 것 같다.

'철뚝집' 비쥬얼을 담당할 대패삼겹살이 든든하다.

이제...사진은 그만 찍고 먹어볼까나.핫핫(침을 닦으며)

대학교때 조리학을 전공했던 나는 어디서 보고 들은건 많아서 꾸리살 굽기 전에 버터를 한조각 넣어준다.

버터가 타지 않을정도로 팬을 달궈주어야 한다는 것과, 센불에서 소고기를 익혀야 한다는 딜레마 사이에서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고기는 팬에 올라가 있었다. 

소고기를 먼저 먹고 삼겹살을 구우려 했지만, 우린 인내심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닳은 것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역시 노릇노릇 잘 구워지고 있는 대패 삼겹살의 모습니다.

'철뚝집'의 삼겹살처럼 바싹하게 구워 파채에 얹어먹을 생각을 하며 다리가 저절로 동동거려졌다.

로메인 상추에 돼지고기 한점과 파채를 싸서 한입 크게 먹으려는 모습이다.

로메인은 상추보다 부드럽고 쓴맛이 많지 않아서 조금 비싸지만 그래도 종종 사먹는 야채이다.

남자친구는 고기만큼 버섯을 좋아해서 구워지는대로 그에게 버섯을 수급했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마늘도 한점씩 먹으면 그 맛이 정말 말할 수 없이 좋다.

소고기는 두께가 두꺼워서 생각보다 굽는데 오래걸렸다.

드라이에이징 꾸리살이 3천원이어서 묻지도 따지지 않고 업어왔는데, 그 맛은 조금 묻고 따져도 될 맛 이었다.

꾸리살이 이런맛이구나...남친과 나 모두 무언의 눈빛을 나누었다.

그래도 소고기라는 것에 감사하며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이 사진은 아마 볶음밥을 먹기 위해 마지막 대패삼겹살을 굽고 있는 사진인듯 싶다.

저 삼겹살들은 이내 곧 가위로 잘게 잘리어 밥과 깻잎과 파채, 마늘 튀김과 함께 볶음밥이 되어 볶음밥의 소명을 다하고 사라졌다.

왜때문인지 이후는 볶음밥 사진이 없다.

분명한건 정말 만족스러운 저녁식사였다는 것, 굳이 외식을 하지 않아도 집에서 근사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날 우리는 유난히도 회사에서 사람/일 때문에 힘들고 지친 날이었다.

그저 밖에서 대충 저녁을 먹으려고도 했지만 무언가 내가 만족할만한 식사가 아닐 것 같았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더 지칠것 같기도 했다.

장도 새로이 보고, 집에서 고기를 요리하고, 기름 설거지를 해야했지만 그것들을 이겨내고 우리 스스로 차려냈다는 성취감이 더 컸다.

이제 종종 집에서 외식분위기를 내며 차려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